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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과 기네스북에 등재된 한국 방송사 레전드 프로그램

바로 1983년 방송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한국 방송사 레전드 프로그램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기네스북에 등재된 한국 방송사 레전드 프로그램

바로 1983년 방송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이야.

원래는 라디오에서 이산가족찾기를 시도했는데 반응이 좋자, TV에서도 해보겠다고 나서서 지금의 아침마당격인 한 프로그램에서 이산가족 코너를 내걸었는데 한 가족도 못 찾았다보니 담당 PD가 오기가 생겨서 제대로 특집방송을 한 번 해 보자고 우긴데서 시작해. 마침 휴전 30주년이다보니 휴전 특별기획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150명을 늦은 밤 자투리시간에 스튜디오에 불러서 한명한명 사연을 소개하면서 해당되는 사람 있으면 전화 주세요 하는 형식으로 1시간 30분 정도 진행한 다음 마감뉴스 하고 그날 방송을 끝내는, 그냥 단순한 특집프로그램을 생각했었다고 해. 시대분위기상 남북한 이산가족을 연결해주는 건 엄두도 못냈고, 우선 남한 내의 이산가족들을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었지.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때라 남한 내에 있어도 서로 찾기가 거의 불가능했거든.

그렇게 무난하게 기획하고 평화롭게 방송이 시작되었는데…

방송 시작하자마자 난리가 난거야. 애초에 이산가족이 있는 사람만 해도 수백만이었고, 남는 시간이 밤이라 밤에 편성한 프로그램이지만 그 시절 그 시간에 딱히 볼 게 있는것도 아니다 보니 없는 사람들도 별 생각 없이 티비를 보다가 다른이들의 눈물나는 가족사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지. 스튜디오에는 고작 150명 모셔놓고 시작했지만 KBS로 전화가 빗발치고, 이내 온 사무국은 물론 전국 지방KBS의 전화선까지 모조리 온라인 상태가 되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진행자 유철종씨는 이렇게 한마디를 해.

“이제 통금도 풀렸으니, 전화가 안되면 KBS로 달려오셔도 됩니다”

원래 0시반에 마감뉴스를 내보내고 그낭 방송을 마무리하려던 KBS는 긴급편성으로 연장해서 새벽 2시 반까지 5시간을 내리 진행하고서야 마감뉴스를 내보낼 수 있었어. 결국 이 날 29가족이 상봉하는 모습이 전국으로 중계되었지. 방송을 마무리하면서도 전화가 풀리지 않자 KBS에서는 다음주 중으로 이 프로그램을 한번 더 하겠다고 이야기하고서야 겨우 마쳤어.

하지만 방송을 마치고 나오는 KBS 직원들을 기다리고 있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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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본관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는 1만여명의 이산가족들이었어. 유철종씨는 혹시나 이산가족을 보고도 연결이 안돼 속터지는 사람이 있을까봐 이야기한건데, 다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택시 타고, 차를 끌고, 아니면 달려서라도 무작정 여의도로 찾아온거지.

이제 다음주 중으로 프로그램을 한번 더 해 보겠다는 KBS의 약속은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어. 왜냐고? 이미 전국민의 눈이 KBS로 쏠렸거든. 결국 바로 다음날 오후부터 모든 편성을 취소하고 연속 5일동안 릴레이로 생방송을 진행하게 돼. MC를 맡았던 유철종씨는 집에 가기는 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이틀 내내 밤새 방송을 진행해야만 했지. 방송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옷도 못 갈아입으셨다고… 유철종씨가 체력적으로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이미 흥행대박을 직감한 KBS는 간판 아나운서들을 모조리 때려박고 본격적으로 방송을 해.

그렇게 해서, 약이 오른 PD가 명예회복하겠다고 기획했던 1시간 30분짜리 기획프로그램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지.

뭐 단편프로그램을 연장하다시피 하면서 시작한 프로그램이다보니 처음 며칠간은 보면 거의 방송사고의 실시간 중계라고 볼 수 있어. 애초에 큐시트따위는 의미가 없어졌고, 자기네 혈육이나 지인들이 나올까봐 TV만 뚫어져라 보면서 사연 듣고 있다보면 갑자기 TV안에서 함성이 터지고, 울부짖고, 카메라맨이 헐레벌떡 쫓아가면 서로 부둥켜안고 뒹굴고 있고. 방송화면에는 카메라맨 작가 MC 엔지니어 이산가족이 너나할것없이 뛰어다니는데다 동문서답은 기본에 베테랑 아나운서가 감정이입이 되서 같이 울다가 주체가 안되서 나가서 울고 오고, 정리 안되는 작가는 여기저기 고성을 지르는데 후진 오디오장비는 온갖 잡음이 다 섞여들어오고, 지방방송국들은 사연 하나라도 더 내보내려고 서로 난리치고…

그러나 이런 점들이 더 인간적으로 보였나봐. 당시에는 한집건너 한집은 이산가족이 있다시피 하던 때인데다가, 이웃들끼리도 서로 왕래가 잦다 보니 주위에는 꼭 하나쯤 있는 이야기라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그렇게 온 국민이 귀기울이는 방송이 돼.

아래 영상은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야.

(52:26부터 시작되는 남매의 사연이야)

전쟁통에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동생은 고아원을 거쳐 무려 제주도로 입양되었고

오빠는 이런 방송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떻게든 방송을 보겠다고 차에까지 TV를 달고(무려 1983년에!!) 다녔다고 해.

여동생은 자기 본명도 기억못할 정도로 어렸었지만, 영상을 보면 방송국이 연결되자마자 오빠다! 라고 바로 알아차린 걸 보면 신기할 따름

(사실 저 두마디에 바로 알아차린게 아니라, 여동생 사연소개를 본 오빠가 방송국으로 직행해서 방송에 나온 것).

이 남매의 상봉장면은 이 프로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제대로 축약하는 장면으로 꼽혀.

중간에 몇초간 잠깐 다른 방송국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오는데, 그 뒷부분을 보면 PD가 당시로서는 보기 힘들던 각종 방송기법들을 쏟아부어(나무위키에서는 PD가 약을 거하게 빨았다고 표현하더라). 특히 오빠가 “니이름은 현옥이야 현옥이라고! 김씨가 아니라 허씨란 말야!! 니 이름을 알아야지 이놈아!!! 개도 이름이 있는데!!! 니이름이 현옥이란말야!!!” 하면서 오열하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 되었지.

게다가 어떤 정장입은 남자가 귓속말을 한 뒤 오빠되시는 분이”여러분!!! 우리모두 나가서 김일성을 쳐죽입시다!!!” 라고도 외치셔.

아마 방송국에서도 이게 그림이 되겠다 싶으니 한마디 해달라고 한 게 아닐까 싶어. 이 역시 시대상이라면 시대상이겠지.

보는 사람들도 모두 감정이입해서… 공동 진행자인 이지연 아나운서조차 멘탈이 깨져서 울러 나갈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앞뒤로 탐색하다 보면 다른 가족들의 상봉장면도 많이 볼 수 있고, KBS에서 전 방송을 올려놨으니 다른 시간 방송도 볼 수 있어.

상봉장면 보다보면 진짜 눈물난다. 왠지 울고 싶을 때다 싶으면 한번 봐봐.

 

(맨위에 사진으로 나온 남매. 49:55초부터 보면 돼)

이렇게 시작된 방송은 무려 6개월간 총 453시간 45분동안 진행되었어.

워낙 오랫동안 진행했다 보니 최장시간 단일프로그램 연속 생방송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지.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무려 78%를 기록했어.

물론 저때는 공중파만 있었던 시절이긴 하지만, KBS2TV도 아닌 1TV에서 이걸 찍었다는건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일이지.

이 프로그램은 한국 방송기술 발달사에도 의미가 깊은데

최초로 각 지역국을 서로 연결하는 다원생방송을 진행했고, 생방송에 실시간으로 영상과 음악 입히는 것, 외국스튜디오와의 실시간 연결을 통한 방송 진행 등등… 지금 기준으로야 당연히 조악해보이지만 당시로는 처음 시도해보는 각종 기법들을 시도했지.

이 방송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방송장비들이 보급되고, 이후 88올림픽까지 겹치면서 한국의 방송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돼.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여의도광장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한국 방송사 레전드 프로그램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기네스북에 등재된 한국 방송사 레전드 프로그램

그리고는 이산가족찾기 운동본부가 발족하고, 그 넓은 여의도광장은 사람을 찾는 포스터로 뒤덮이게 돼.

저기에서 기획자들이 감동을 받았다는게, 분명히 잘 보이는 자리가 존재하고 너무 넓어서 찾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도 다른 사람의 것을 떼거나 겹치게 붙이거나 도배하질 않았으며 남의 포스터가 찢어지면 서로 붙여주거나 써주기까지 했대.

(그 포스터가 세번이나 떨어지자 주인이 빡돌아서 하루종일 죽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헤어진 가족이었다고…)

내가 사랑하는 혈육들을 찾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는 배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고…

국제시장 이산가족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기네스북에 등재된 한국 방송사 레전드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영화 국제시장에도 소개되었지.

국제시장에 나온 사건들이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봤을 때, 나란히 들어갔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다들 잘 알거라 생각해.

Memory of the world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한국 방송사 레전드 프로그램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기네스북에 등재된 한국 방송사 레전드 프로그램

이 방송은 전쟁의 비극과 분단의 아픔 등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했어.

기록유산 중 방송기록물이 등재된 건 베를린 장벽 붕괴 방송과 이 프로그램뿐이니 대단한거지.

(참고로 우리나라 국적의 기록유산은 훈민정음 혜례본, 조선왕조실록 등 총 13건으로 세계 4위, 아시아 1위야. 명불허전 기록의 민족…)

이 방송을 통해 공식적으로 10,187명이 기적과도 같은 상봉에 성공했어.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방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많은 이산가족들이 남아있지.

남북 이산가족이야 말할것도 없지만, 서로 국내에 있는데도 모르고 있는 이산가족들도 여전히 상당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어.

앞으로 이런 분들이 다들 자기 혈육을 찾을 수 있게 되길 바라면서, 그리고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없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칠게.

읽어줘서 고마워!!

* 참고로 설운도를 톱 가수로 만들어 준 프로그램이 바로 이 방송이야. 원래 1회차 기획이다보니 중간에 쉴 때 노래부르게 하려고 현인 등 유명가수들을 모셨는데, 이게 아무래도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KBS에서 아예 상주하면서 노래할 가수를 찾다보니 스케쥴이 완전히 비어 있는 가수가 설운도밖에 없어서(…) 설운도를 거기서 죽치고 있게 한 거. 급히 투입되다 보니 노래가사도 미처 못 외우고 가서 한동안 노래할 차례가 되면 PD가 카메라 뒤에서 가사를 적어서 들고 서있었대. 그렇게 스케쥴이 너무 없어서 땜빵으로 들어간 프로그램이 무려 6개월동안 연속으로 생방송이 되고 시청률 78%를 찍을 줄 누가 알았을까? 설운도는 하루아침에 폭발한 스케줄표를 들고 집에 가서 가족들과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