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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0. 들어가기에 앞서불과 몇년 전만해도 사직구장은 타자친화 구장이라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사직구장의 높은 펜스로 인해 롯데의 팀컬러는 필연적으로 소총부대 달리는 야구여야 했다. 그러나 요즘시대에 점점 롯데의 홈구장인 사직 야구장에서 비단 사직 뿐만이 아니라 여러구장에서 홈런의 수가 증가하고있다. 2012시즌 부터의  총 홈런 갯수로서 615-798-1019-1511-1483-847(진행중…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0. 들어가기에 앞서

불과 몇년 전만해도 사직구장은 타자친화 구장이라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사직구장의 높은 펜스로 인해 롯데의 팀컬러는 필연적으로 소총부대 달리는 야구여야 했다. 그러나 요즘시대에 점점 롯데의 홈구장인 사직 야구장에서 비단 사직 뿐만이 아니라 여러구장에서 홈런의 수가 증가하고있다. 2012시즌 부터의  총 홈런 갯수로서 615-798-1019-1511-1483-847(진행중) 경기수가 늘어났다고는 하나 타고 투저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 더크다고 체감된다.  


홈런팩터.pn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그러던 중 롯데의 홈런 타자들의 현황이 궁금하여 간단하게 조사를 해보았다.







홈런타자 명단
마해영,펠릭스 호세,가르시아,강민호,최준석,이대호(30홈런이상)

1999년도 우타 빅뱃 마해영
삼성레전드.pn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삼성레전드 스택.pn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역대 대한민국 토종 거포들을 뽑으라면 올시즌 삼성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있는 라이언킹 이승엽선수, 미친 파워로 담장을 넘겼던 헤라클레스 심정수 선수,  연습생신화에 표본인 장종훈 선수 그리고 전성기 시절에 그들과 함께 걸어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 선수 마해영 선수가 있을 것이다. 부산고 출신인 그는 93년 롯데의 2차 1순위 지명으로 입단 하였다.(당시 롯데의 1차픽은 김경환선수) 

그해 드래프트는 양신 양준혁, 바람의 아들 이종범, 야생마 이상훈, 대성불패 구대성, 미스터 K이대진선수 등 수많은 레전드들이 프로에 데뷔한 그 해이다


하지만 마해영 선수는 바로 입단하지않고 당시 롯데 감독이던 강병철 감독의 조언에 따라 상무에 입단 후 95년 당시 26살의 나이에 프로야구 씬에 뛰어들게 된다. 그리고 입단 첫해 마해영은 .275 .359 .460 18홈런 87타점 16도루라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팬들의 기대에 충족했고 99년 롯데의 준우승 시기에는 .372 .442 .672 35홈런 119타점의 만점 활약으로 팀을 이끌게 된다. 그리고 2000년 선수협회 파동으로 인해 삼성의 주캇보라스와 트레이드하게 된다. 그리고 뭐 아시다시피 그 이후 롯데는 8888577이라는 역대급 성적을 기록하게 되고 그와 반대로 삼성은 역대 최고의 클린업이라 평가받는 이마양 트리오를 가지게되었다.

그리고 그후 FA로 KIA에 입단하였으나 그닥 눈에 띄는 활약을 선보이지는 못하였고 LG로 트레이드 되며 엘롯기에서 모두 뛰는 선수가 되었으나 LG에서 조차 영 좋지 못한 활약을 펼치고 방출후 롯데의 테스트를 받고 재입단 하였으나 유종의 미를 거두지못하고 방출되었다.


레전드 아닌 레전드

우선 인간성은 치워두고 스탯으로만 그를 봤을때는 대단한 타자인것은 맞다. 

그의 전성기인 1999~2003때 그의 OPS는 가볍게 .900을 뛰어넘었으며 삼성시절 이마양 트리오는 다른팀에게는

재앙수준이였다. 또한 롯빠들의 영원한 딸감들 중 하나인 99년 플레이오프 삼성과의 7차전 그곳엔 그가 있었으며

2002년 이번에는 삼성에서 이승엽에 뒤를 이은 백투백 홈런을 치며 삼성의 우승을 일구어냈을때에도 그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미담이고 

은퇴 후 그는 편파 해설 논란 및 자서전 논란 그리고 강연에서 당시 갓동님이시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비판한데에 이어

롯데 프런트를 대차게 까시며 롯데에서의 지도자 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있다. 
빵사건에도 연루되어있는듯

개인수상 경력

1999년 타격왕
2002한국시리즈 MVP
2002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분
2002한국 안타왕



1999,2001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
검은 갈매기.pn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헤이 영쑤 돈 두댓

영쑤 돈두댓.gif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이걸맞고 에이스로 각성하게 된 배열사 오오 참교육 오오)


검은갈매기 스탯.pn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외국인 선수였으나 그의 능력에대해서 의문을 재기하는 팬들은 없을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11년간

.280 .334 .409를 기록했을정도로 나쁘진 않은 타자였다. 그러나 롯데자이언츠의 입단 후 롯데의 에이스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아재요 빠따 받으소.gif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1999년 롯데의 준우승에 일조 했던 그는 메이저 재도전을 외치며 당당하게 미국으로 향햇으나 실패 그리고 2001년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해외로 간뒤 2006년 돌아와 2007년 방출당하며 4시즌간의 KBO리그의 경험은 막을내린다.

 
뛰어난 실력 그리고 퍼포먼스

그가 가고난 뒤 롯데가 이상하게 달라졌었다.  2000년에는 마림포라 불리던 두명의 선수가 팀을 떠나갔고 선수협회 파동으로 주장이였던 박정태 마저도 평범한 선수가 되버렸다. 2001년에는 시즌 중 팀의 감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고 (아무도 이것이 비밀번호의 시초일줄은 몰랐을것이다) 그런 와중에 호세는 민한신과 함께 팀에 유이한 기둥이였다. 그의 기록을 보면 볼넷이 많다. 그것도 아주많다. 이는 그의 선구안이 좋다는 뜻이아닌 상대팀들이 그만빼면 롯데에서는 무서운 타자가 없다고 여겼다는 반증이며 실재로 100경기 이상 출장 자 중 3할 이상 80타점 이상 기록한 선수는 당시 주장 조경환과 호세 뿐이였다. (그 조경환마저 호세가 나간뒤 나가리되었다.) 2001년 경기수가 적은 이유는 위에 언급한 영쑤 돈두댓 사건으로 출장정지를 먹었기 때문이다. 배영수 선수와의 충돌을 제외하고도 그는 1999플레이오프에서 5차전 만화 같은 끝내기 홈런과 7차전 홈런 뒤 삼성팬들의 갑질에대한 보복으로 빠따를 던지며 퇴장 당하는 것과 신승현 선수와 빈볼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10년 지난 현재 그는 우리가 역대 최고의 용병이 누구냐 라고 서로 입씨름을 벌일 때 간간히 나오며 추억을 회상하게 할 수있는 선수이다.



개인수상 경력
1999년 외야수 골든글러브
2001년 최고 장타율
2001년 최고 출루율

하얀 갈매기 카림 가르시아
(가르시아 가르시아)
하얀 갈매기 독수.pn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하얀갈매기 스탯.pn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롯데거포군단의 홍대갈 중 갈!

데이터로도 볼 수있겠지만 타점 순위 08년도 타점 1위로 우산효과를 톡톡히 본 선수이다. 삼진이 많은데(2009시즌 삼진 1위 124회) 이는 그의 스윙폼인  어퍼스윙이며 퓨어파워히터 느낌이 강한데 쉽게 공갈포를 생각하게하나 걸리면 넘어간다. 홈런의 영양가가 높은 편으로 툭하면 3점 2점의 홈런을 치는둥 영양가 면에서는 만점 활약을 보여주고있다.
갈금님 시절.jp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롯데에서 3년간 뛰다가 자국으로 돌아갔으나 당시 데폴라의 퇴출 이후 대체 용병을 찾던 한화의 눈에 들어와다시 한국 무대로 돌아왔다.

복귀후 활약은 .246 .308 .477 18홈런 60타점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다.
어깨도 강해 우익수 앞 땅볼이라는 진귀한 장면을 보여주기도하였고 머니볼이라는 영화에 이름만 특별출연하기도 하였다.
한국에오기전에 메이저리그 BA랭킹에서 7위를 기록하기도 하는등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일본무대에서도 뛰었는데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05 06 2시즌 동안뛰고 시즌 후 재계약제의를 받지 못하였다
수상경력
2008 타점왕
2008 골든글러브 외야수부분


롯데의 안방마님 NO.47 강민호
미노미노.jp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강미노.pn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것은 오래전 부터 있었던 정론이다. 그리고 그 투수와 배터리를 이루는 포수는 그라운드내의 감독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왕조를 이루었던 팀들을 보면 그 중심에는 에이스 투수와 포수가 있었다. 여러의 미로 포수가 중요하다는것을 부정하는 야구팬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롯데는 최근 10년간 주전포수 걱정은 없었는데 그 중심에는 강민호 선수가 있었다. 역대 최고의 포수를 꼽는다면 sk 왕조의 박경완 선수 삼성의 이만수 선수 LG의 김동수 선수 삼성왕조의 진갑용 선수 해태왕조의 장채근 선수 등이 언급되겠지만 2010년대 이후 야구를 보게되는 사람은 강민호 선수를 꼽게 될 것이다.  
강민호 선수는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17순위에서 선발되었다. 
입단 당시 그는 수비형 포수로써 잠재력을 조금 더 높게 평가받는 그런 포수였다.(당시 롯데 1픽은 장민지 왜 정상픽이지??) 
수화캐슬과 최대성 전준우(허나 본인거부 4년후 재지명) 등과 동기다. 
2005년 최기문선수의 백업으로 간간히 나오더니 104G .243 .267 .341
2006년부터 주전포수로 발돋움하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09년WBC등 국가대표 안방마님의 라인을 밟으며 경험을 축적 시킨 강민호는 
2010시즌 OPS가 .900를 넘으며 공격형 포수로 각성하게된다
2011 2012시즌 .289 .366 .480 .273 .355 .468 등을 기록하며 골든글러브를 획득 후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게된다.
2013시즌 도루 저지율 1위를 기록하며 수비적 부분을 강조하였고 4년 75억 FA계약을 성공 시켰다.미노 도루저지.jp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그러나 FA첫해 거나한 먹튀를 시전하게 되고
그 이듬해 전시즌의 부진이 마치 꿈인것 마냥 
.311 .421 .639 35홈런을 기록하며 포수 사상 첫 3할 30홈런을 기록하며
박경완의 뒤를 이은 최고의 공격형 포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 다음해 주장이였던것은 뽀나스)
그럼에도 골글은 못받았다.
현재도 포수 라는 포지션에 국한하게되면 최고의 포수라는 찬사가 이상하지않다. 
기본적인 수비와 공격 둘다 되는 유틸리티성 포수
이대호 뒤를 이은 최고의 프랜차이즈
역대 수상목록
2008년 골든글러브 포수부분
2011년 골든글러브 포수부분
2012년 골든글러브 포수부분
2013년 골든글러브 포수부분
2015년 미스터 올스타

조선의 4번타자 NO.10이대호
조선마리오.pn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이대호 스탯.pn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유일무이 한 미 일 리그 모두 경험자 역사상 전무후무한 7관왕

2001년 추신수와 함께 롯데에 지명되었다.(그리고 추신수는 미국으로 갔다.)
입단당시에는 투수였으나 타자로 전향 
2001년 호세의 폭력사건으로 인해 기회를얻어 6경기 8타수 4안타의 성적을 기록
얼굴을 비추었다.
그리고 2006년 8888577 의 5등 시즌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하며 주목을받았다.
그리고 2007시즌 2년 연속 OPS 0.900이상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뽐냈으며
08베이징올림픽 09WBC등을 경험하며
201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인 9경기 연속 홈런과 타격 7관왕을 기록하며 역대급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그 시즌 이후 롯데 프런트의 병크와 함께 이듬해 FA로 인한 일본 진출을 선언하였다.
그의 첫 구단은 오릭스 버팔로즈 
입단 첫해 .286 .356 .478 24홈런 91타점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시즌후 베스트 9에 선정된것은 보너스
2013WBC .455의 타율로 체면치례만 하였다.
이듬해에도 괜찮은 활약을 펼치며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  2년간 더뛰다가 빅리그 도전을 선언하였다.
일본리그에서 그의 NPB성적은
570경기 .293 .370 .486 98홈런 348타점 242득점을 기록하며
홈런 3위 / 출장 2위 / 타석 4위 / 안타 4위 / 2루타 3위 / XBS 1위 / 타점 2위 / 볼넷 6위 
/ 타율 11위 / 출루율 10위 / 장타율 6위 / OPS 5위를 기록하였다.

시즌 후 시애틀 마리너스로 이적하였으나 플래툰 시스템에 의해 주전에 정착하지 못하고
결국 4년 150억으로 롯데에 돌아오게된다.
현재까지는 먹튀 확정이다.

롯데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처음 그를 보는 사람들은 그가 파워에 의존하는 파워형 타자로 볼 수있다. 그러나 천천히 보다보면 
그는 파워형 보다는 장거리 교타자에 가깝고 세게 쳐서 홈런이아닌 정확하게 맞추면 넘어가는 형식의 배팅매커니즘을 지니고있다.
  KBO 유일한 트리플크라운 2회를 가지고있을정도로 컨택 능력이 뛰어나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이승엽이
한국프로야구의 흥행을 주도했다면 2000년대 후반에는 이대호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마치며.


이번시즌 어느덧 올스타브레이크를 앞두고있다. 필자의 두번째 칼럼이며 첫칼럼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개인적으로 개선하고 싶다고
느꼇으며 두번째 칼럼에대해 무엇을 쓸까 고민을하였다. 불펜투수진에 대해 쓸까 하다가 이미 칼럼글에 있는걸 확인한 후 다시 고민하였다.
다른팀 기록을쓸까 하다 팬이 아닌 사람이 그들을 기록에대해 하찮게 보면 어쩔까 하는 비난이 두려워 심사숙고하게되었다.
그러던 중 롯데의 경기를 보다 암에 걸릴 뻔하여  짜증이나 가장 재밌던 시즌에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홍대갈 트리오가 떠올라 이런 글을 쓰게되었다. 
2번째 칼럼이고 쓰면 쓸수록 정말 지식이 부족하다는걸 느낀다.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글을 쓰도록 노력할 것이다.
짧게는 1주 길게는 2주마다 한편씩 쓸예정이니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지말아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

오예스 맛있쪙 NO.25 최준석 

오예스 뻐킹.jp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오예스공장장.png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2001년 롯데에 포수로 입단한 최준석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채 2006년 두산으로 트레이드 된다.

그리고 2009년 .302 .386 .474 17홈런 94타점을 기록하며 화수분야구의 효과를 톡톡히봤다.
이후 2010년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고
2013년  시즌이 끝난 후 FA권한을 사용 후 친정팀 롯데로 복귀한다. FA첫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성적을 보여주었고
.286 .411 .529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2015년 시즌 초 장민지 뼈기혁 사유리등을 잡지 못한 롯데는 문자그대로 암울한 시즌을 시작하였고 
그해 주장으로 임명되며 더욱 힘든 시즌을 보낼거라 예상되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후 뚜껑을 열어보니 
144G .306 .428 .529 31HR 109RBI를 기록하며 역대급 시즌을 보냈다 
그의 몸값이 바로 혜자로 둔갑하는 마술 (4년 35억)
이번시즌 잘해주고있으나…..(최근 10경기 무안타)
최근에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오예스 맛있쪙.gif 롯데자이언츠 사직의 30홈런이상 타자들을 알아보자

끝!


http://www.fmkorea.com/baseball 에펨코리아 야구갤러리

참고자료
KBO기록실
스탯티즈
롯데자이언츠 공홈
롯데 자이언츠 때문에 산다
프로야구 결정적 30장면

작성시 들은 노래
꿈에선 놀아줘

작성시 본 경기 
롯데 VS한화 7/12일자 경기
롯데VS 한화 7/13일자 경기
2017-07-13 19:25 최준석 추가 완료